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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 (1)

댓글 : 11 조회 : 592

0. 들어가기에 앞서

- 북한에는 평양성을 시작으로 북관대첩비에 이르기까지 총 193건(2006년 기준)의 국보유적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해당 글은 이러한 북한 국보유적들을 사진과 간단한 설명으로 들여다보기 위한 글이며, 다만 193건의 국보유적들을 모두 다루기에는 양이 너무 많아 일부만을 선별 하였습니다. 이 점 참고하여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시 모두 알고 싶다 하시는 분은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낸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2006)’을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 이번 시리즈는 총 4부작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1. 평양성 (국보유적 제1호)

- 평양 내에 위치하고 있는 평양성은 6세기 후반에 건설된 고구려 성곽이다. 장수왕 시기 국내성으로부터 평양성으로 천도한 이후 고구려 멸망 때까지 수도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성은 대동강과 보통강을 해자로 이용하였으며 북쪽으로 갈수록 지세가 높아지는 점을 이용해 낮은 곳으로부터 외성, 중성, 내성, 북성으로 구획하여 방어의 이점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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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에 그려진 '평양성도'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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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때 멀리서 촬영된 평양성 성벽의 일부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1-1. 보통문 (국보유적 제3호)

- 평양성 중성의 서문으로 보통강 변에 위치한다고 하여 보통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평양성 탈환의 주 공격로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1473년에 중건된 이래 지속적인 유지, 보수의 과정을 거치며 현재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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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때 촬영된 보통문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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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보통문 / 출처 :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2006) >

 

1-2. 대동문 (국보유적 제4호)

- 평양성 내성의 동문으로 대동강 변에 위치한다고 하여 대동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평양성의 여러 성문 가운데 가장 중요하며 또한 가장 널리 알려진 성문이다. 현재의 모습은 1635년의 중건 이래 지속적인 유지, 보수 과정을 거쳐오다 한국전쟁으로 한번 크게 파괴된 뒤, 재건되어 현재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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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시대 때 촬영된 대동문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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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대동문 / 출처 :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2006) >

 

1-3. 칠성문 (국보유적 제18호)

- 평양성 내성의 북문으로 북두칠성에 유래하여 칠성문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안문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으나 문루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본래 적에게 성문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암문에는 문루를 두지 않는데 칠성문에는 존재한다.) 1711년과 1764년에 중건한 기록이 있으며 이때의 모습이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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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때 바깥쪽에서 찍은 칠성문. 한참 보수 중인 모습이다.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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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쪽에서 찍은 현재 칠성문 / 출처 : 중앙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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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때 안쪽에서 찍은 칠성문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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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쪽에서 찍은 현재 칠성문 / 출처 :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2006) >

 

1-4. 을밀대 (국보유적 제19호)

- 냉면을 생각나게 하는 을밀대는 평양성 내에 있는 7개의 장대 가운데 하나로 최승대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장대이다. 이름은 ‘윗미르터(윗밀이언덕)’에서 유래하였으며 사방이 트여 있어 경치가 좋다. 1714년 개축한 이래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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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때 촬영된 을밀대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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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을밀대 / 출처 :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2006) >



2. 안학궁터 (국보유적 제2호)

- 평양 대성산 소문봉 남쪽 기슭에 위치한 고구려 궁궐터로 현재는 사진과 같이 터만 남아 있다. 과거 발굴조사 결과에 따르면 총 52채의 건물(궁전터 21채, 화랑터 31채)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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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때 촬영된 안학궁터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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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안학궁터 / 출처 :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2006) >

 

 

3. 대성산성 (국보유적 제8호)

- 평양 대성산에 있는 고구려 산성이다. 평양지역 및 안학궁 방위를 목적으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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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때 촬영된 대성산성 동벽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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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대성산성 / 출처 :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2006) >

 


3-1. 대성산성 남문 (국보유적 제10호)

- 위에서 설명한 대성산성의 남문이다. 현재의 모습은 1978년에 복원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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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대성산성 남문 / 출처 :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2006) >

 

 

4. 용산리 고구려 무덤군 (국보유적 제15호)

- 평양 용산리에 위치한 고구려 고분군으로 제련산 남쪽 기슭에는 총 9기의 고분이, 동남쪽 설매동릉선에는 총 5기의 고분들이 확인된다. 동명왕릉이 위치한 곳이기도 하며 중요한 벽화고분들이 다수 분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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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용산리 고구려 무덤군 / 출처 :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2006) >

 

4-1. 동명왕릉 (국보유적 제36호)

- 평양 용산리에 위치한 동명왕릉은 (북한 측의 주장에 따르면)처음부터 평양에 위치했던 것은 아니고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하면서 옮겨온 것이다. 1993년 대대적으로 재건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무덤 외곽에는 다양한 석상들이 세워져 있는데 이는 동명왕이 고구려를 건국할 때 도움을 주었던 무관과 문관, 그리고 그들이 타고 다니던 말 등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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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때 촬영된 동명왕릉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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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동명왕릉 / 출처 :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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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명왕릉 내부에 남아 있는 연꽃무늬 흔적 / 출처 : 
고구려 고분벽화(2004) >


4-2. 진파리 1호분 (국보유적 제181호, 유네스코 세계유산)

- 평양 용산리에 위치한 고구려 벽화고분으로 6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내부벽에는 사신도와 더불어 해와 달, 이외 여러 무늬가 그려져 있으나 그 가운데에서도 소나무 그림이 가장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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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때 촬영된 진파리 1호분과 4호분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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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때 촬영된 진파리 1호분 모줄임천장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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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때 촬영된 진파리 1호분 백호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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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때 촬영된 진파리 1호분 소나무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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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진파리 1호분 / 출처 :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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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진파리 1호분 모줄임천장 / 출처 : 북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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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진파리 1호분 소나무 / 출처 : 북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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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진파리 1호분 청룡 / 출처 : 북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2018) >


4-3. 진파리 4호분 (국보유적 제180호, 유네스코 세계유산)

- 평양 용산리에 위치한 고구려 벽화고분으로 6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내부벽에는 사신도와 더불어 해와 달, 신선, 각종 여러 무늬들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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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때 촬영된 진파리 4호분 모줄임천장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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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때 촬영된 진파리 4호분 백호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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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진파리 4호분 / 출처 :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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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진파리 4호분 모줄임천장 / 출처 : 북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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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진파리 4호분 백호 / 출처 : 북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2018) >


 

5. 호남리 사신무덤 (국보유적 제26호, 유네스코 세계유산)

- 평양 호남리에 위치한 호남리 사신고분은 이름에서도 짐작이 가능하겠지만 네 벽면에 그려진 사신도로 유명한 무덤이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그려져 고구려 사신도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는데 있어 중요하다고 평가되는 고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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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시대 때 촬영된 호남리 사신무덤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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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시대 때 촬영된 호남리 사신무덤 청룡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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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호남리 사신무덤 / 출처 :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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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호남리 사신무덤 청룡 / 출처 : 북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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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호남리 사신무덤 주작 / 출처 : 북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2018) >


 

6. 상원검은모루유적 (국보유적 제27호)

- 교과서를 통해서도 자주 들어봤을 상원검은모루유적은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적 가운데 하나로 1960년대에 발굴되었으며 다양한 종류의 석기들과 동물화석들이 발견되어 주목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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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상원검은모루유적 / 출처 :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2006) >



7. 강서세무덤 (국보유적 제28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남포 강서구역에 있는 고구려 벽화고분으로 3개의 무덤이 모여있어 세무덤이라고 부른다. 고분의 크기에 따라 강서대묘, 강서중묘, 강서소묘로 구분하며 내부의 사신도 벽화와 모줄임천장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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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때 촬영된 강서대묘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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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때 촬영된 강서대묘 현무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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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때 촬영된 강서대묘 백호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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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강서대묘 / 출처 :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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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강서대묘 청룡 / 출처 : 
북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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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강서대묘 현무 / 출처 : 북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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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강서중묘 현무 / 출처 : 북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2018) >


8. 약수리 벽화무덤 (국보유적 제29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위의 ‘강서세고분’과 마찬가지로 남포 강서구역에 위치한 고구려 벽화고분으로 ‘강서세고분’보다는 앞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고분 내부에는 사신도와 더불어 고분 주인, 나아가 고구려인들의 생활양식과 고구려 건축술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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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약수리 벽화무덤 청룡 / 출처 : 북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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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약수리 벽화무덤 부부도 / 출처 : 북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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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약수리 벽화무덤 행렬도 / 출처 : 고구려 고분벽화(2004) >

 

9. 수산리 벽화무덤 (국보유적 제30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마찬가지로 남포 강서구역에 위치한 고구려 벽화고분으로 1971년에 발굴되었으며 그 내부에는 고구려인들의 생활양식을 파악할 수 있는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한편 벽화에 나타난 고구려 복식은 일본의 다까마쓰 고분과 비교되어 고구려와 일본 사이의 문화교류 양상을 살펴보는데 있어 중요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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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수산리 벽화무덤 부부행렬도 / 출처 : 북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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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산리 벽화무점 부부행렬도에서 부인 부분을 확대한 사진, 오른쪽은 여자 시종 / 출처 : 북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2018) >


 

10. 쌍기둥무덤 (국보유적 제39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남포 용강읍에 위치한 고구려 벽화 고분으로 전실과 현실 사이에 2개의 8각 기둥이 세워져 있어 쌍기둥무덤이라고 한다. 내부벽에는 사신도와 더불어 고구려인의 생활양식과 복식을 알 수 있는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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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때 촬영한 쌍기둥무덤 묘주도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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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때 촬영한 쌍기둥무덤 인물도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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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때 촬영한 쌍기둥무덤 기마인물도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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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쌍기둥무덤 / 출처 :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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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쌍기둥무덤 내부 / 출처 : 북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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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쌍기둥무덤 천장 / 출처 : 북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2018) >


11. 묘향산 보현사 (국보유적 제40호)

- 평안북도 묘향산에 위치한 사찰로 고려 시대에 조성된 사찰이다. 다만 보현사는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적이 있으며 현재의 모습은 1976년에 복원된 모습이다. (다만 모든 건물이 복원된 것은 아니고 일부만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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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때 촬영된 보현사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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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때 촬영된 보현사 대웅전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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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보현사 대웅전 / 출처 :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2006) >

 

 

12. 고려장성 (국보유적 제48호)

- 흔히 천리장성으로도 불리며 고려시대에 조성되었다. 압록강 하구에서부터 함경도의 동해바다에 이르며 성벽 대부분은 석성이나 이루어져 있으나 일부 흙으로 쌓은 구간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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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고려장성 / 출처 :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2006) >

 

* 참고자료

: 국립문화재연구소,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2006)

 

* 사진출처

: 각 사진 하단에 별도 표시

이 게시물에 달린 코멘트 11
Torukia9 09.13 05:42  
보통문과는 다르게 대동문은 1950년 6.25 전쟁 때 심하게 파괴되어서 후에 다시 복원된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높이도 전체적으로 좀 낮아졌어요.
sinmun 09.13 05:42  
Torukia9 먼저 지적 감사합니다. 제가 참고한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2006)'에는 해당 내용이 언급되지 않아서 넣지 않았습니다. 일단 글의 사진 배열이 쓸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막상 올리고 나니 문제가 생겨서 수정 좀 먼저 하겠습니다...
Torukia9 09.13 05:42  
sinmun 보는 데는 문제 없습니닷 ㅎㅎ
sinmun 09.13 05:42  
Torukia9 지적해 주신 내용 반영했습니다 ㅎㅎ
필통옆망고주스 09.13 05:42  
정성자료추..
sinmun 09.13 05:42  
필통옆망고주스 감사합니다 ㅎㅎ
다이아정글러 09.13 05:42  
난 통일되면 제일 하고싶은게 유적 탐방. 경주에 살았던 덕택에 부모님이랑, 가끔은 친구들이랑 유적지 찾으러 다녔던게 너무나도 재밌고 또 추억의 한 카테고리인데. 꼭 통일이 아니더라도 북한에 있는 유적지는 꼭 가보고싶다. 아마도 고려 고구려 유적지만의 색다른 느낌이 물씬 풍기겠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가요~
크림소스파스타 09.13 05:42  
통일되면 사학계 붐 오나?
완슬 09.13 05:42  
을밀대 '냉명을' 오타 있네요 10번의 현실과 안칸은 뭔가요?
sinmun 09.13 05:42  
완슬 오타 지적 감사합니다!! 반영하여 수정하였습니다!! 또한 안칸과 현실이란 표현을 전실과 현실이란 표현으로 수정하였습니다. 전실과 현실에 대해 설명해 드리자면 먼저 현실은 관을 안치하는 무덤방을 말하고 전실은 현실보다 앞에 위치한 또 하나의 방인데 앞에 있다고 해서 전실이라고 부릅니다.
중앙정보부 09.13 05:42  
잘봤습니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