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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화랑들은 왜 자살공격에 나섯을까?

댓글 : 3 조회 : 991

개인적인 생각입다..



먼저 불교의 영향이라고봄


아니 불교는 불살에 자비가 교리인데 무슨 불교야? 싶지만

신라의 불교는 호국불교의 성격이 매우 짙었음

그리고 그런 호국불교적 색채가 불교의 윤회설과 결합됨


즉 나라와 임금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를 다한다

이 것이 바로 선업이고 이를 다하면 다음 생에는 더 좋은 존재로 윤회할수 있다.

이 논리가 신라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다고 봄

극단적으로 보면 지금의 이슬람 원리주의자와 크게 다르지 않기도???





두번째로는 불교와 믹스된 유교


신라의 기록을 보면 아버지와 아들이 함깨 전쟁에 나가는 장면이 많이 보임

심지어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3대 출전도 종종 보임

이런 상황에 전쟁에서 잘싸워서 국가에 충성하고 

같이 싸우는 부모, 조부모의 면목을 세워주는 것이 "충효"라는 개념이 됨

화랑은 삼국사기에서도 유불선을 믹스한 거라고 하니 

유교의 영향인 충효의 개념도 무시 못함

그리고 임전무퇴라는 화랑의 계율이 이를 제도적으로 더욱 강화시켰고

이렇게 충효를 다함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지만

진정 신라사회에서 인정받는 인물이 될 수 있었다고 봄


예를 들어 지금 국회의원이 되려면 뭐 당에도 좀 꼽사리끼고 

이것저것 많이 해야하고 오래걸리지만

신라시대에는 관창이나 반굴마냥 한번 퍼포먼스 보여주고 살아남으면 

한방에 모든걸 증명한거로 인정받아서 

존경받는 지도층으로 발돋움 할수 있었다는거임(물론 골품이 좀 받쳐줘야...)



예를 들어 그 유명한 김유신조차 30살 될때까지는 기록조차 없다가

30살때 아버지 김서현과 함깨 참전한 낭비성 전투에서 

전황이 불리하자 스스로 자원해서 관창이나 반굴마냥 고구려군 상대로 단기돌격하여 

고구려장수 목을 따고 깃발을 꺽어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이후부터

기록이 본격적으로 남기시작했으며



비령자가 반굴이나 관창마냥 백제군에 단기돌격해 싸우다 죽자

아들 거진도 뒤따라 뛰어나가 싸우다 죽고

그 종 합절도 그를 보고 뒤따라 나가 싸우다 죽었을때

총사령관 김유신이 직접 그들의 유해앞에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하고 

왕이 눈물을 흘렸을 정도임



물론 반굴, 관창의 예를 보면 모두 자원하는게 아님

그들도 사람인데 그러면 죽을 가능성이 99.9프로라는건 알았을거고

죽고싶지 않았기에 자원하지 않았을거임

하지만 아버지 역시 "충"이라는 입장에서 현생과 다음생을 위해 내보내야하고

아들 역시 "효"라는 입장에서 현생과 다음생을 위해 나가야했을거임


나라를 위해 희생하라는 아버지의 명령 거부 = 사람들의 비웃음,가문의 불명예 = 불효,불충 = 악업 = 다음 생에 악영향


반굴이나 관창의 뇌속에는 이런 논리구조가 만들어 졌을거임

나갈때에 비해 안나갈때의 손해(?)가 너무 막대함

안나가면 지금의 삶뿐만 아니라 다음 생까지 조질수 있는데 비해


나가면 설령 죽어도 더 좋게 환생이 가능하며

만의 하나 살아남기만 하면 바로 지도층으로 발돋움 가능하니까...

그렇기에 죽을걸 알면서도 나가 싸울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함




이 게시물에 달린 코멘트 3
아말피 04.20 07:51  
거기에 아직 삼국시대는 귀족제 혈통이 매우 강력한 사회였던지라 님이 언급한 저런 사상이 당연시 된다고 가정하자면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오는 것은 귀족 사회에서 자기 가문에 대한 대단한 망신살이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봄
콩글리시 04.20 07:51  
아말피 동의함 그리고 김유신이 원술랑에게 그렇게 대한 것도 비주류 가야계 가문이었기에 더 심했다고 봄 ㅇㅇ 골품제같이 혈통이 모든것이던 사회에서 이미 동화된지 100년이 넘은 가야계라 할지라도 영원히 비주류 외부인일수밖에 없었을거임 그렇기에 그렇게라도 충성심을 증명해야 했던게 아닌가 싶음
새타령부인사잘해 04.20 07:51  
니는 뜬데이~ 무조건 뜬데이